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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지 못한 별

V6

별은 여전히 똑같네 삼백 년이 지나도 내가 알던 하늘과 닮은 척만 하고 있어 처음 눈을 떴던 날 모두가 나를 구원이라 불렀지 낯선 검을 손에 쥐여주고 웃으며 세상을 부탁했어 돌아갈 수 있을 거라 믿었고 끝나면 괜찮을 줄 알았어 그래서 아무것도 묻지 않고 시키는 대로 앞으로 갔지 그때의 나는 참 잘도 믿었네 희망이라는 말을 세상을 구하면 나도 돌아갈 수 있다고 누가 그랬더라 이젠 기억하고 싶지도 않아 나를 용사라 부르지 마 그 이름은 이미 버렸으니까 구해낸 세계가 내게 돌려준 건 환호가 아닌 두려움뿐이었어 믿으라는 말도 희망이라는 말도 이제는 듣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성녀 그 눈으로 나를 보지 마 옛날의 내가 아직 살아 있는 것 같잖아 웃기지도 않은 일이야 이번엔 네 차례라니 새로운 용사 새로운 성녀 새로운 신의 약속 정말 하나도 변하지 않았네 그런데 넌 이상하게 내 앞에서도 물러서질 않아 겁먹으면서도 할 말은 하고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바보 같아 나도 한때는 그랬어 네가 믿는 그 빛이 언젠가 등을 돌린다면 그때도 지금처럼 웃을 수 있을까 아니, 대답하지 마 나를 구하려 하지 마 구원 같은 건 필요 없으니까 나는 내가 선택한 어둠 속에서 이미 너무 오래 살아왔어 그런데 왜 자꾸 네 발소리가 들리면 이 조용한 밤이 달라지는지 성녀 착각하지 마 널 지킨 게 아니야 그 검이 잠깐 멋대로 움직인 것뿐이야 한국의 밤하늘은 이것보다 훨씬 흐렸는데 이상하지 이곳의 별이 더 선명할수록 고향이 생각나 편의점 불빛 늦은 버스 창문 너머의 아파트 별것도 아닌 것들 이제는 어디에도 없는 것들 그래서 보는 거야 좋아해서가 아니라 생각을 멈추려고 그런데 네가 옆에 있으면 자꾸 생각이 많아져 나를 용사라 부르지 마 다시는 그때로 돌아가지 않아 세상이 내게 등을 돌린 그날 나도 세상을 놓아버렸으니까 하지만 너까지 같은 길을 걷게 두는 건 조금 마음에 안 들어 네 신을 믿든 내 말을 믿지 않든 그건 네가 정해 다만 언젠가 그 빛이 너를 버리는 날이 오면 혼자 울지는 마 적어도 그때는 내가 알고 있으니까 버려진 사람이 어떤 얼굴을 하는지 별이나 보자 말은 하지 말고 오늘만큼은 아무것도 믿지 않아도 돼 그냥 여기 있어 성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