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풍산 깊은 골, 눈보라 휘몰아치던 밤, 인조의 어깨, 무거운 나라의 운명을 짊어진 채, 남한산성으로 오르는 길, 짚신에 선혈이 배었다. 서흔남, 이름 없는 나무꾼, 지게 내려놓고 임금을 업었다. 험한 산길, 얼음 위로 미끄러져도, 그 발은 멈추지 않았고, 마침내 성곽 안, 임금을 내려놓았다. 곤룡포를 청한 그의 소원, 인조의 미소 속 하사된 옷자락. 병풍산 아래, 그의 무덤 곁, 곤룡포 품은 채 영원에 잠들었다. 관원들, 말에서 내려 경의를 표하고, 그 이름, 천민의 충심으로 역사에 새겨졌다. 또 다른 이야기, 누더기 걸친 서흔남, 쪽박 들고 적진을 누볐다. 걸인 행세, 눈과 귀 되어 청군의 허실을 캐내고, 조정은 그의 공을 기려 벼슬을 내렸다. 남한산성, 바람 속에 서흔남의 묘비가 서 있고, 그의 발자취는 실록에, 민초의 가슴에 아로새겨졌다. 곤룡포 한 벌, 충심의 무게, 병자호란의 얼음길에서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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